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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릴케의 실존적 사랑 』
    Journal/자투리 2023. 2. 20. 15:04

     

     

    이 포스팅은  "릴케의 실존적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고찰하는 글입니다. 

     

     

     

    릴케의 실존적 사랑이라는 개념은 사랑에 대해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충돌하는 부분이 많았다.

    사람들은 보통 사랑에 대하여 1. 살아있는 대상을 사랑한다. 2.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특성을 발현하며 사랑한다. 3. 연인은 상대의 일부분을 소유하며 간섭할 수 있다. 4. 몸이 떨어지면 마음도 떨어진다. - 다음과 같이 믿는다.

     

     

    그러나 릴케의 실존적 사랑은 위의 진술들은 종합적인 개념들로써 반박한다. 실존적 사랑을 알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사랑의 대상과 목적은 무엇인가?”, “사랑에서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는가?”, “소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소유하고자 해야 하는가?”, “사랑과 고독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다.

     

     

     

     

     

     

    릴케에게 사랑의 대상은 살아있음과 무관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감정을 향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충족해야하는 어떤 조건은 없다. 대상이 죽더라도 우리는 의식 속에서 대상이 존재하며, 그 대상을 사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실존적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사랑을 유발한 대상이 어떻게 되든지, 그 결과가 사랑하는 자의 내면에서 무조건 사랑이 멈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사랑은 대상의 상태에 상관없이 사랑하는 자의 내부에서 진행됨을 반박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체험을 통해 생성된 우리 내면의 어떠한 것이다.

     

     

    릴케는 여성이 여성성을 걷어낼 때 더 인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의 여성성은 사회적 관습에 대한 여성성이다. 관습에서 벗어나 더 인간의 본질에 가까워질 때 실존적 사랑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특히 릴케는 창작의 체험과도 유사한,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특성이 사랑에 대한 성숙함을 보여주며 남성보다 더욱 근원적으로 인간답다고 말한다. 성숙함에 대한 릴케의 추구는 사랑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릴케는 사랑의 목적이 성숙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며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자의식의 소유. 그렇다면 소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소유는 무엇일까

     

     

    소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야한다. 먼저 릴케는 사랑하는 이를 소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때 소유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물리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를 말한다. 이 관점은 볼노브의 논점과 대비된다. 볼노브는 연인을 정신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소유를 반대한다. 그러나 애초에 릴케는 정신적으로도 사랑하는 이에 대한 소유를 부정한다. 소유의 대상에 대한 범위부터 다른 것이다.

     

     

    이와 다르게 슈바르츠는 사랑의 물리적인 부분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소유할 수 있음에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보다 성숙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릴케와 슈바르츠를 비교해보자. 우선 소유의 범위의 가정이 다르다. 릴케는 사랑하는 이의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슈바르츠는 물리적인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연인에 대하여 물리적인 것을 소유하는 것을 반대하고 부정한다는 측면에선 둘이 유사하다고 하겠다. 우리는 실존적 사랑을 위해서 상대의 물리적인 부분을 소유해서도, 소유할 수 있다고 믿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아직 소유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한 논점은 그렇다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소유해야하는가이다. 이것에 대한 힌트는 위에서 나와 있는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자의식의 소유이다. 또한 사랑의 대상은 결국 사랑하는 이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도 관련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향하는 감정을 체험하고 그 경험에 대한 내면상태를 소유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디 세상에 대하여 한정된 경험, 제한된 인식만을 얻을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 불완전함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써 릴케는 사랑(소유)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체험을 통해 스스로 세상을 인식하고자 하는 의지의 자의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을 통해 내면에 생성된 어떤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추구해야한다.

     

     

     

    고독

     

     

     

    마지막으로 릴케의 실존적 사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은 고독이다. 릴케는 사랑은 고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고독은 상대를 밀어내거나, 상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릴케의 고독은 정신적인 내면에서 발생하는 활동이며, 상대에 대한 의식적인 몰두를 의미한다. 아렌트는 물리적 고독에서만 사랑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릴케의 입장에서 잘못된 주장이다. 물리적으로 함께하여도 상대의 고독을 존중해주는 관계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고독을 위하여 우리는 정신적인 거리감을 갖고 상대에 깊게 몰입하고자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그녀 또는 그의 손을 잡고 있는 중인가-와는 무관하리라고 믿는다.

     

     

    이로써 릴케의 실존적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우리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이다. 가벼움을 참기 힘들 때, 사랑을 하고 새로운 자의식을 소유함으로써 이 가벼움을 극복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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